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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사바하 해석 (스포 있음) - 주여,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사바하는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라는 불교 용어로, 검은사제들을 만든 장재현 감독이 만든 작품입니다. 예수의 탄생을 앞두고 벌어진 헤롯왕의 유아 살해 사건이 그 모티브로, 여러 기독교적 이야기와 상징, 불교적 이론 등이 섞여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이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또 연구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왜 영화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렸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것/ 김제석 

 

불교의 연기설이란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존재하기에 영화에서는 악이 있기에 선이 있는 것이고, 선이 있기에 악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과 김제석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불변적인 의미의 '악'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본래 김제석은 미륵이었으나 '100년 뒤 본인을 해하는 천적이 난다'라는 네충텐파의 예언을 듣고는 더 이상 미륵이 아닌 악이 됩니다. 그는 본래 죽음까지 이긴 미륵이었으나, 생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 인하여 죄 없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죽입니다. 

 

이에 반해 그것은 처음에는 기괴해 보였지만 실은 진짜 미륵이었습니다. 

바로 그녀의 육손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불교에서 6이라는 숫자는 완결을 의미합니다. 그것과 김제석 모두 육손을 가지고 있는데, 이로써 이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설에 따라 김제석이 죽기에, 그것 역시 죽게됩니다. 

 

김제석이 헤롯왕, 그것이 아기예수, 후에 설명드릴 정나한이 유아들을 살해한 로마병사, 그것의 존재를 예언한 티벳의 고승 네출텐파는 동방박사로 볼 수 있습니다. 

 

쌍둥이 - 금화와 그것 

 

금화는 1999년생으로 그것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영화에는 신흥종교 사슴 동산의 신도가 정나한에게 금화의 학적부를 건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씬에서 생일이 1999년 5월 22일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날은 '부처님 오신 날'로 '그것'이 미륵임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또한 금화와 그것의 어머니는 쌍둥이를 낳은 지 7일 만에 숨을 거두는데, 이는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은 지 7일 만에 사망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것은 뱃속에 있을 때 금화의 다리를 물어뜯어, 장애인으로 만들었고, 이는 금화가 사회적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다른 죄 없는 아이들은 김제석의 표적이 되었는데, 그것은 '너는 도대체 누구냐'라는 나한의 물음에 '나는 울고 있는 자'라고 답합니다. 자신을 대신해 죄 없는 아이들이 죽임을 당할 때마다 진정으로 가슴 아파한 선한 존래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목사 

 

가장 감정이입이 많이 됐던 인물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극적인 것만 찾아 돈을 버는 세속적인 종교인으로 나옵니다. 신흥종교 사슴 동산을 발견하고, 돈이 될 것을 직감한 그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합니다. 계속해서 사슴 동산의 실체를 쫓던 중 티벳고승 네충텐파를 만나 그가 죽음까지도 이겨낸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사이비 교주들의 비리를 추적하며, 신이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일까 의문을 가지고 살던 그는 네충텐파를 만난 후 김제석이 진짜 신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처음에 그가 본 (가짜)김제석은 산소호흡기에 의지에 누워있었고, 그는 당신이 진짜라면 여기 이렇게 있으면 안되지 않냐고 절규합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그가 실은 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후반부 박 목사는 후배의 이야기라며 남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선교를 갔던 곳에서 후배의 어린 자녀와 아내가 살해당했는데, 후배의 가족을 죽인 아이가 '신의 뜻'으로 이들을 죽였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실은 박 목사의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고난의 시기에 신을 찾았지만, 신은 끝내 그에게 그 이유를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마 그때부터 신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사이비들을 쫓지만, 그래도 알 수 없었던 그 실낱같은 해답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신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의 주제와도 상통하는데, 아직 이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이 계시다면 꼭 권해드리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 역시 고난의 순간에 당신은 도대체 어디에 계셨는지 그 질문에 대한 영화입니다. 

 

정나한 

 

아라한, 깨달은 자라는 뜻에서 차용한 이름으로 보입니다. 김제석이 생을 연장하기 위해, 소년교도소에서 양아들로 삼은 4명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의미로 선택되었습니다. 양아들로 삼았지만 김제석은 실은 그들을 호위무사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해주지도 않습니다. 이는 코끼리 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코끼리의 눈을 보고 왜 두렵지 않냐고 반문하며, 김제석은 나한을 총으로 죽입니다. 평생 그를 믿고 충실하게 그를 위해 평생을 산 나한을요. 

불교에서 코끼리는 굉장히 신성시하는 동물이라 합니다.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가졌을 때 꾸었던 태몽이 바로 6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한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지만, 하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마음을 다잡아 왔습니다. 하지만 김제석은 그를 한낱 도구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후에 그것이 진짜 미륵임을 깨닫고, 김제석을 처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