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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안녕하세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기도하고 일하라"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에 따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바치는 아름다운 전례와 렉시오 디비나(성독), 그리고 다양한 사도직과 선교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도원입니다. 

 

만주 연길의 성 십자가 수도원과 북한의 덕원 수도원이 한국 전쟁을 전후해서 공산당에 의해 폐쇄되고, 이후 박해와 희생을 겪었지만 이곳 왜관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관수도원에는 분도식품, 분도출판사, 금속공예 작업장, 유리공예 작업장 등 여러 작업장이 있습니다. 각각의 수도자들이 이곳에서 일하며 기도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공지영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왜관수도원은 공지영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왜관역에서 내려 이곳까지 오는 10분 남짓 거리의 묘사와 수도원 내부의 설명이 마치 바로 실제 수도원을 눈에서 보고 그리듯 묘사되어 있습니다. 수도원은 봉쇄구역이 있기 때문에 방문을 하더라도 안 쪽까지는 들어갈 수 없지만, 소설 속에는 수도원 내부의 모습 또한 묘사가 되어있어 대신 짐작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곳 수도원을 방문하기 전에 공지영 작가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보시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수도원에 숨겨졌던 겸재 정선의 전설의 화첩 

 

1975년 3월 3일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한국 청년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여러 나라의 민속품들이 가득한 박물관에서 그는 겸재 정선의 화첩을 발견합니다. 조선 산수화의 정수가 머나먼 독일 땅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겸재 정선의 화첩이 이역만리 독일 땅에 있을 수 있었을까요? 

 

1911년 총 4개월동안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압바스인 베버 수도원장께서는 조선땅을 방문합니다. 사라져 가던 조선에 연민이 많으셨던 베버 수도원장님께서는 조선의 민속, 생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독일로 가져가십니다. 바로 이때 21첩의 겸재 정선의 그림도 독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수도원장께서는 조선을 여행한 사실들을 책으로 엮어내셨는데 그 책이 바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5)에서 입니다. 당시 조선의 풍습, 민속, 생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겸재 정선의 화첩을 이곳에서 수련하고 있던 선지훈 신부가 우연치않게 접하게 됩니다. 이 화첩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기를 소망하고 있던 중 뮌헨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였던 예레미아스 신부가 오틸리엔의 수도원장이 됩니다.  그래서 선지훈 신부는 이 화첩의 반환 문제를 조심스레 제의합니다. 

 

하지만 이 화첩은 수도원에서도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장은 수도원의 12인 장로회의에서 화첩 반환 문제를 상의했고 만장일치로 한국으로 반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 무렵 겸재의 화첩은 고미술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뉴욕의 크리스티는 우리 돈 50억을 수도원에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아스 수도원장은  '주님은 기꺼이 주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하시며 2005년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고, 겸재 정선의 화첩을 한국에 돌려줍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떠났던 겸재정선의 화첩이 8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왜관수도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보았습니다. 왜관에 가시면 꼭 이곳을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