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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김대건신부의 생애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신부(세례명: 안드레아)가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2021년은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로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선정은 더욱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명사의 기념일을 정하여 관련 행사를 진행해왔습니다. 

신부님이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된 이유로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조선전도를 제작해 유럽 사회에 조선을 알리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신부님은 만 25세의 짧은 생을 사셨음에도, 한국 가톨릭 역사에 길이 남길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이런 신부님의 생애를 가톨릭성지들과 함께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솔뫼성지 (충남 당진)

1. 솔뫼성지 

솔뫼성지는 김대건신부가 태어나고 자란곳입니다. 증조부(김진후), 종조부(김종한), 부친(김제준), 그리고 김대건신부 등 4개의 순교자가 살았던 곳으로 '한국의 베들레헴'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태어난 지 몇 년 만에 가혹해진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 지방(은이성지)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교황이 방한하셨을 때 이곳에서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가지셨고, 이후부터 매년 8월 14일부터 15일까지 프란치스코 데이 행사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은이성지 (경기 용인) 

2. 은이성지 

김대건신부는 가혹한 가톨릭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지금의 은이성지)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습니다. 1836년 프랑스 모방 신부가 이곳에 왔을 때 그는 처음 세례를 받습니다. 

 

은이성지에는 아주 특이한 성당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김가항성당입니다. 김가항은 '김 씨 성을 지닌 사람들의 골목'이란 뜻으로 본래는 중국 상해에 있었습니다. 중국 명나라 말기 김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성당을 세워 붙여진 이름으로, 신부님은 바로 이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습니다.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다 2001년 상해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가 시행됩니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가톨릭 교인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고향을 떠나 바로 이 곳 은이성지에 자리 잡게 됩니다. 최대한 김가항 성당을 복원하려는 노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자재들을 직접 가지고 왔다 합니다. 

성 안토니오성당(마카오)

3. 성 안토니오성당 

은이성지에서 세례를 준 모방 신부의 추천으로 김대건신부는 마카오 성 안토니오성당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 사제들이 신학, 프랑스어, 라틴어 등을 가르쳤으며, 신부님은 이곳에서 열심히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습니다. 사제를 기다리고 있던 조선 가톨릭인들을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견문을 넓히려 공부했던 신부님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 입니다. 

 

성 안토니오성당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의 하나로, 1560년에 지어졌습니다. 이곳에는 신부님의 목각 성상과 발등 뼛조각의 유해가 있는데요. 이를 보러 방문하는 한국인 순례객들을 위한 한국어가 미사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됩니다. 

4. 새남터성지 

마카오에서 수학하고, 중국 상해 김가항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김대건신부는 조선으로 돌아와 사제직을 수행합니다. 조선정부의 탄압을 피해 가능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뜻을 전하려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 

1년 1개월 동안 조선땅에서 신앙의 씨앗을 뿌렸던 신부님은 새남터성지에서 만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합니다. 

 

당시 영어, 스페인어, 라틴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당한 엘리트였기에 당시 조선 정부는 신부님에게 배교하면 높은 벼슬과 후한 상을 주겠다고 설득하지만 거절당합니다. 땅에 속한 것은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이에게 처음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순교 후 1984년, 마침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