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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체코 프라하 프라그의 아기예수님 성상과 성당 역사

내 일생일대의 소원이 있다면 체코 승리의 성모 성당에 계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 보는 것이다. 일단 그냥 아기 예수님이라 너무 좋다. 그리고 다양한 코스튬과 아기가 주는 순수함 그 자체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또한 어떤 상황에도 축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더욱 기도에 매진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아무런 약탈이 일어나지 않음 

 

1741년 프라하 시가지가 적에게 점령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약탈이 없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탈취당한 도시가 이토록 거의 손상당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때 집집마다 프라그의 아기예수님 상본을 문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18:3)


많은 성인의 공경을 받음 

예로니모 성인, 베르나르도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안토니오 성인,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등 많은 성인들의 사랑과 공경을 받았다. 

 

아래는 성당에서 제작한 책자에 나와있는 구절이다. 

 

성당에 관한 역사 

 

소지구는 프라하의 작은 도시라는 뜻으로, 프라하 성 근처 산기슭의 작은 언덕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프라하에서 가장 단아하면서도 흥밋거리가 가득한 곳으로 고풍스러운 프라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기도 하다. 궁전, 정원, 서민주택들, 광장, 특히 성당 등이 어우러진 자그만 골목들, 늘어진 담쟁이덩굴의 그늘, 어둠에 자신을 내 맡긴 불빛 등은 소지구만의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렇게 매혹적인 주변 환경 속에 승리의 동정녀 마리아 가르멜 성당이 Karmelitska 거리를 향해 서 있다. 소지구에 소재한 성당들 중에서도 특히 이 성당은 그 건축학적 가치나 그 안에 소장한 예술 장식품의 중요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숭배되고 있는 아기 예수상이 모셔져 있어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 곳곳에 모셔진 아기 예수상과 성상 경배 처는 이곳의 아기 예수님을 본뜻 것이다. 

 

성당의 북면에 쓰여진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이 성당은 1611-1613년 사이에 건립되었다. 당시 독일의 루터 교에 소속되었으며 성 삼위일체에 봉헌되었다. 이 성당은 프라하에서 몇 개 되지 않은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으로 건축 설계자는 vignola과 palladio의 로마 고전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성당 건축을 직접 진두지휘한 건축가는 루돌프 2세의 궁정 건축가였던 이탈리아인 Giovanni Maria Fillippi였다. 

 

체코의 반개혁 운동의 승리 후 페리드난드 2세 황제는 성당을 승리의 동정녀 마리아와 성 안토닌 파두안스키에 봉헌하고 가르멜 수도회에 귀속시켰다. 1636-1647년 사이에는 무명의 건축가에 의해 새롭게 개축된다. 개축 후 사제석이 반대편의 성단 동쪽으로 옮겨졌으며, 블타바강과 도심부를 향해 정문을 내고 초기 바로크 양식으로 건물 정면을 세웠다. 성당 진입은 3부로 나눠진 계단으로 가능하다. 이 승리의 동정녀 마리아 성당의 개축을 통해 프라하 성당에 초기 바로크 양식이 도입되기 시작한다. 

 

아기 예수님 성상에 관한 역사 

 

스페인의 이름 없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16세기에 Manrique de Lara 가문의 소유였다. 성육신에 대한 숭배, 예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강조는 당시의 스페인에 유행되었다. 가르멜 수도회의 창시자인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수도원 설립 당시 항상 아기 예수상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1556년 Maria Manrique de Lara는 체코귀족과 결혼 시 자신의 모친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이 아기 예수상을 프라하의 신혼집으로 가져온다. 이후 과부가 된 그녀의 딸은 1628년 아기 예수상을 가르멜 수도원에 증정하였다. 그러나 30년 전쟁 기간 동안 프라하에 색슨 족이 침입하여 성당과 수도원을 약탈한다. 침략자들은 아기 예수상의 두 손을 부러뜨리고 제단 뒤의 쓰레기 더미에 버려 몇 년 동안 아기 예수상은 거의 잊혔다. 그러다 1637년 신부 시릴이 이 아기 예수상을 찾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버려진 드디어 버려진 아기 예수상을 발견한다. 각고의 노력으로 재정적 곤란을 극복하고 프라하 왕실 집무원의 도움으로 아기 예수상의 손을 수리한다. 

 

이후 다시 신도들의 숭배를 받기 시작했고 스웨덴 군인들의 포위 시에도 프라하를 구원하는 등 경이로운 일들이 모두 아기예수의 은총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많은 나라의 신도들에게 숭배를 받음. 

 

유럽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인도, 필리핀, 호주,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신도들이 숭배하고 있다. 이 나라들에 널리 퍼져있는 많은 성지들은 아기 예수가 많은 지역에서 숭배받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해당 기도로 병자, 추방당한 자, 감옥에 간 자 등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받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