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아지

펫로스 증후군 실제 강아지를 떠나보낸 후 느꼈던 점

나는 올해 만으로 17년을 키웠던 내 강아지를 떠나보냈다. 심장병과 신부전을 앓은 지 약 2년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스스로 병을 컨트롤 할 수 있을 때에는 마지막 한달 정도의 고생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 시간들은 내가 가장 지우고 싶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 대부분이 이런 일을 겪었단 말이야? 
내가 인내심이 적은건가? 나 왜 이렇게 힘들지? 

 

내 댕댕이는 매일 피하수액을 2번씩 맞고 여러 가지의 약을 먹으면서도 건강을 잘 유지해주고 있었다. 약과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강아지가 건강을 유지해주는 것이 내게 큰 위안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발작'이 일어났고 그 후로 일어나지 못했다. 순한 풀잎 같은 아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발작을 하는데 너무 무서웠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다시 발작을 할까 하루하루가 너무 무서웠다. 이후 전혀 걷지 못했기에 내 손길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새벽에 24시 동물병원을 찾아갔지만 원래 다니던 아이가 아니었기에 그 어떤 약도 주지 않았다. 5분 정도 이야기한 후 내게 8만 원을 청구했다. 포화하는 동물병원에  수의사들은 정말 못할 짓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본래 다니던 병원에 갔다. 딱히 해준 것도 없었다. 그 후 하체에 부종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생명이 꺼져가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었다. 순수하게 까만 눈동자로 나를 보는 아이를 보며 나는 무기력해져만 갔다. 당시에는 치매도 매우 심했지만 정신이 돌아올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정도는 나도 구분할 수 있었다. 내게 모든 걸 의지하고 또 고마워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곧 다시 한 번의 발작이 일어났다. 너무 무서워 병원에 일단 입원을 시켰다. 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내게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난 후 대소변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방광의 위치를 찾아 소변 보는 것을 직접 해줘야 했다. 항문은 계속 열려있어 설사가 조금씩 나왔다. 소변을 못 보면 혼수상태에 빠진다는 글을 본 후 그렇게 매일 짜주었다. 

 

더 이상의 고통은 안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수의사에게 안락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독한 진통제를 먹여도 아프다고 울부짖는 개를 편안하게 보내주지 않으면 아파 죽을 때까지 견디란 말인가? 내가 갈 때마다 내는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의 진료비 때문에 시켜 주지 않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때부터 다시는 개를 키우지 말아야겠단 결심을 굳혔다. 

 

여러 동물병원을 접하며 정말 믿지 못할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아픈 개를 그냥 돌려보냈던 일, 약 용량을 제대로 맞추는 병원이 단 한곳도 없었던 것, 수술을 엉망으로 해 2번 자궁 축농증 수술을 받게 했던 일 등 무려 18년 동안 만족할 만한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부종으로 몸무게가 엄청나게 늘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아이가 내 앞에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안락사를 구걸했다. 약 2주동안 호흡도 불규칙적이었고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는지 쉽게 무지개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그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 달이란 시간을 견뎌주었다. 

 

예약을 잡고 병원에 도착해서도 지네 할 일 하면서 30분이나 기다리게 했다. 아파 죽어가고 있는 개를 이렇게 방치하는 건가 싶어 자리를 박차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얼른 고통만이라도 끝내주고 싶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30분 후 내 강아지는 편안하게 갔다. 너무 허무하게 죽어 이렇게 죽는 걸 내가 억지로 껴안고 살려보겠다고 내 모든 걸 바쳤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통을 없애주고 싶었다. 

 

 

그 날은 눈이 펑펑 왔다. 너무 예뻤다. 그리고 기뻤다.

그렇게 화장을 시킨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서 누워만 있었어도 집이 텅 빈 것만 같았다. 그 허전함은 그 어떤 감정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가족들도 다른 개를 키워볼까 내게 물었지만 나는 절대로 키우지 않겠다 선언했다. 바로 병원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절대 개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차차 나아졌다. 

 

나는 펫로스 증후군을 겪지 않았다. 가족들은 분명 내가 무척이나 힘들어할 거라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1.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위로 

2. 무지개 다리 건너 맛있는 거 먹고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거라는 생각 

3. 언젠가는 분명 만날 것이라는 확신 

4.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는 마음 

 

이 중에서 1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곁에 없다는 나의 상실감 보단 내 댕댕이가 더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꿈에서조차 단 한 번을 나오지 않았다. 정말 행복하게 친구들과 놀고 있기에 그런 것 같다. 

 

유골함은 아직 내가 가지고 있다. 겨울에는 춥다고 묻지 못했는데 여름이 되니 더워서 묻지 못하겠다는 핑계만 가득이다.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나와 함께 묻히지 않을까?